원래 수도국산이라는 이름은 만수산 또는 송림산이었다고 한다.
산언덕에 소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었고
이 주변이 매립되기 전에는 바닷가의 조용한 소나무 숲이었었다.
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소나무를 베고
언덕에 정착하여 사는 사람들이 늘면서 달동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송림산이 수도국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이쪽 지역이 우물이 적고 수질 또한 나빠서
물 확보가 쉽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제시대에 한국정부는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1906년 탁지부에 수도국을 신설하여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에 착수를 하였고
이 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가 생기게 되면서
수도국산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산동네가 아니라 왜 달동네일까?
달동네는 높은 산 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는 의미로
도심에서 쫓겨난 판자촌 주민들은 정부가 정한 지역에 임시천막을 짓고 살았는데
밤에 누우면 밤하늘의 별과 달이 잘 보인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그 이후로 1980년대 TV일일연속극 <달동네>가 큰 인기를 끌면서
달동네라는 이름이 산동네의 대명사가 되었다.














 


사실 달동네 박물관은 상당히 어둡다.
어두운 밤의 달동네 모습을 재현해 놓을려는 취지에서인지
가로등 불빛 아래의 골목길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진을 찍을때는 참 애로점이다.
후레쉬를 터뜨리지 않으면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고
후레쉬를 터뜨리면 가로등불빛 아래의 어두운 골목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ㅎㅎ



 

































 

작년 9월쯤에 북서울 꿈의 숲에서 개장 1주년 기념으로
아트센터에서 청계천의 추억이 개장되었었다.

잠깐 스쳐갔던 기억이라도 추억이라는 이름은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60,70년대의 청계천 판자촌의 모습과 경의선 굴다리 밑의 골목길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었다.

굴다리 밑의 판자집의 부엌빵집, 문방구, 연탄집등 그 시대의 다양한 생활상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다시금 늦게 포스팅을 하면서 옛날의 추억을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다.

청계천의 추억 들어가는 입구...

 경의선 굴다리 밑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굴다리 밑 판자집의 부엌과 방



 
코닥사진관과 그 옆의 전봇대의 소변금지가 인상적이다... 

 삼천리 연탄집... 얼굴에 연탄을 묻히고 추운 겨울에 다 타버린 연탄재 가지고 눈사람도 만들던 기억이 새록새록...

 종로서점..


 
추억의 다방....아마도 쌍화차에 달걀 두둥....

 
샤니 , 삼립  양대 빵집 과 널려 있는 국수들
 

 그당시만 해도 귀했던 텔레비와 라디오들


 
이 펌프로 물을 퍼올려서 등목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에도 이럴라나??? 80년대초까지만 해도 가방을 등에 메고 학교가서 의자 뒤에 가방 걸쳐놓고 수업듣고 했었는데...

 아래의 고등학생들 가방을 보니 모자 삐딱하게 쓰고 가방메고 부산 거리를 달리던 영화 "친구"가 생각이 난다...